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이비드 비티 (문단 편집) === [[제1차 세계대전]] === [[제1차 세계대전]]이 발발한 뒤, [[헬리골란트-바이트 해전]]에서 제1순양전함전대를 지휘했던 비티는 이후 독일 해군이 도거 뱅크로 출격하자 이를 감지한 영국 해군의 명령으로 독일 해군을 공격하기 위해 출격한다. [[도거 뱅크 해전]]에서 비티는 [[프란츠 폰 히퍼|프란츠 히퍼]]가 지휘하는 정찰부대를 27노트의 속력으로 추격했다. 그러나 비티가 지휘하는 제1순양전함전대는 신형 순양전함인 HMS 라이온, [[라이온급 순양전함|HMS 프린세스 로열]], [[타이거급 순양전함|HMS 타이거]]로 구성된 반면, 아치발드 무어 [[소장(계급)|소장]]이 지휘하는 제2순양전함전대는 구형 순양전함인 [[인디패티거블급 순양전함|HMS 뉴질랜드]]와 [[인빈시블급 순양전함|HMS 인도미터블]]로 구성되어 제1순양전함전대와 같은 속도로 달릴 수 없었고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했다. 거리가 좁혀지자 비티의 기함인 HMS 라이온은 제1정찰단의 후위에 있던 [[블뤼허급 장갑순양함|SMS 블뤼허]]를 공격하기 시작했고, 뒤이어 다른 함정들이 포격 거리에 들어오자 비티는 각 함은 상대 번호함과 교전할 것[* Engage your opposite number.]이라는 명령을 내렸다. 하지만 이 명령은 영국 함정이 5척이고, 독일 함정이 4척인 상황에서 약간의 혼란을 초래했고, HMS 타이거가 판단 실수로 [[몰트케급 순양전함|SMS 몰트케]]를 포격해야 하는 상황에서 [[자이틀리츠급 순양전함|SMS 자이틀리츠]]를 HMS 라이온과 같이 포격했다. 영국 함정들이 SMS 자이틀리츠를 대파시킨 상황에서, 독일 함정들 역시 영국 함정들의 선두에 있는 HMS 라이온을 집중적으로 포격해 큰 피해를 입고 속력이 떨어졌다. 결국 비티는 기함을 옮기면서 적과의 거리를 더 좁히라는 신호를 보내려고 했으나[* Engage the enemy more closely. [[호레이쇼 넬슨]] 제독이 [[트라팔가르 해전]]에서 사용했던 명령이라고 한다.] 해당 신호가 코드 북에는 없어 대신 적에 더 접근하라는 신호를 보냈다.[* Keep nearer to the enemy.] 하지만 HMS 라이온은 여기저기 손상되었는데다가 명령을 받은 장교의 실수로 무어 소장에게는 북동쪽의 적을 추격하라고 전달이 되었고, 하필 그 자리에는 SMS 블뤼허가 있었기에 결국 SMS 블뤼허를 격침시키는 데에서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다. 비티는 기함을 HMS 프린세스 로열로 옮겼지만, 이 때는 이미 전투가 끝난 다음이었다. 이 때 나타난 신호 문제는 [[유틀란트 해전]]에서 다시 비티의 발목을 잡게 된다.[* 당시 비티의 신호장교였던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Ralph_Seymour_(Royal_Navy_officer)|랠프 시모어]] 소령은 [[윈스턴 처칠]]과의 인맥을 통해 완전한 신호 전달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비티에게 기용되었다. 비티는 전쟁 중과 전쟁 후에도 시모어를 신뢰했으나, [[유틀란트 해전]]에서 비티의 행적이 논란이 되자 시모어와 비티의 관계는 끊어지게 된다.] 도거 뱅크 해전 이후 비티는 순양전함함대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, 유틀란트 해전에서 비티가 지휘하는 순양전함함대는 독일의 [[대양함대]]를 유인하기 위해 출항했다. 그러나 순양전함함대에 배속된 휴 에번토마스 소장의 제5전함전대[* [[퀸 엘리자베스급 전함]] 4척으로 편성. HMS 퀸 엘리자베스는 수리를 받느라 유틀란트 해전에 참여하지 못함.]가 비티의 신호를 알아보지 못하는 바람에 전열에서 뒤쳐졌다. 하지만 히퍼의 정찰부대를 저지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비티는 제5전함전대를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정찰부대와 교전을 개시했다. 그러나 여기서도 비티의 신호를 알아보지 못한 [[퀸 메리급 순양전함|HMS 퀸 메리]]가 사격배분을 따르지 않아 [[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|SMS 데어플링어]]가 자유롭게 포격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. 결국 독일 함정의 포격으로 기함인 HMS 라이온이 이탈하자 SMS 데어플링어는 영국 함정들의 포격을 견뎌내던 SMS 자이틀리츠와 함께 HMS 퀸 메리를 격침시키고 만다. 이 와중에 [[폰 데어 탄급 순양전함|SMS 폰 데어 탄]]과 포격을 주고 받던 [[인디패티거블급 순양전함|HMS 인디패티거블]]마저 격침되자 비티는 자신의 기함이었던 HMS 라이온의 함장에게 "오늘 우리 망할 배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."라는 말을 남기게 된다.[* "Chatfield, there seems to be something wrong with our bloody ships today." 여담으로 이 당시 비티의 기함인 HMS 라이온의 함장이었던 에른 체필드 대령은 72대 [[해군참모총장|제1해군경]]을 지내게 된다.] 결국 난타전 끝에 히퍼가 순양전함함대를 대양함대의 사정거리 안에 끌어들이는 임무를 완수하자 비티 역시 이를 알아채고 북쪽으로 물러나 대양함대를 [[대함대]]의 사정거리 안에 끌어들이려고 했는데, 또 다시 제5전함전대에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제5전함전대는 상황을 제 때 파악하지 못하고 조금 늦게 북상하게 된다.[* 이 신호 미스는 나중에 비티와 에반-토마스 간의 책임을 두고 격렬한 공방이 있었으나, 두 번째 신호 미스의 경우에는 에반-토마스가 비티의 움직임을 보고 상황을 파악했어야 한다는 견해가 좀 더 일반적이다.] 이 와중에 대함대 본대와 함께 움직이다 비티를 돕기 위해 호러스 후드 소장의 제3순양전함전대가 합류하지만 후드 소장의 기함인 [[인빈시블급 순양전함|HMS 인빈시블]]마저 독일 함정들의 포격에 탄약고가 유폭되어 격침되고 만다. 결국 유틀란트 해전에서 영국 해군은 독일 해군보다 큰 피해를 입었으나 전략적 승리를 거두는 데 성공했고, 결국 영국 해군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데 실패한 독일 해군은 [[U보트]]를 이용한 [[통상파괴전]]에 집중하게 된다. 유틀란트 해전 이후 비티는 [[존 젤리코]]의 뒤를 이어 대함대 총사령관이 되었다. [[퀸 엘리자베스급 전함|HMS 퀸 엘리자베스]]를 자신의 기함으로 삼은 비티는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대함대사령관 직을 유지하다가 전쟁이 끝나자 대양함대를 스캐파플로로 이송해 억류하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